2017년 개봉한 영화 '올 더 머니'는 세계적인 석유 재벌이자 수집가였던 진 폴 게티의 손자 납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범죄와 협상을 그린 스릴러가 아니라, 부와 권력, 인간성 사이의 갈등을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와 실제 사건의 차이, 진 폴 게티라는 인물의 삶과 철학, 그리고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게티 박물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고, 저의 개인적인 감상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영화 '올 더 머니'의 실제 납치 사건
영화 '올 더 머니'의 중심에는 1973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발생한 존 폴 게티 3세 납치 사건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16세였고, 전설적인 석유 재벌 진 폴 게티의 손자였습니다. 납치범들은 막대한 몸값을 요구했지만, 진 폴 게티는 이를 거부합니다. 영화는 이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실상은 더 냉정했습니다. 진 폴 게티는 손자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했고, 언론의 압박과 손자의 귀가 잘려 도착한 뒤에서야 마지못해 협상에 나섰습니다. 그것도 세금 공제가 가능한 한도 내에서 말이죠. 저는 이 대목에서 깊은 혼란을 느꼈습니다. 자식을 넘어 손자까지도 금전적 계산의 대상으로 삼는 그 시선은, 현대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손주가 14명이나 되는데, 한 명의 몸값을 지불하면 나머지도 납치될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은 계산적인 이성과 인간적 감정 사이의 거리감을 극단적으로 드러냅니다. 당시 언론도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인색한 사람”이라며 비판했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며 저는 한 가지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과연 돈은 모든 것을 보호할 수 있는가?” 진 폴 게티의 선택은 그 자신에게는 논리적이었을지 모르지만, 가족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는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사실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했지만, 실제 현실은 오히려 더 극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현실이 영화보다 더 세다”고 말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영화 속 인물 vs 실제 진 폴 게티
영화에서 진 폴 게티 역은 원래 케빈 스페이시가 맡았다가 성추문 사건으로 크리스토퍼 플러머로 교체되어 전면 재촬영되었습니다. 이 사실 자체가 영화 제작 과정의 복잡함을 보여주는 한 단면인데요, 아이러니하게도 교체된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오히려 더 차갑고 설득력 있는 게티의 이미지를 완성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지만, 간혹 인간적인 고뇌도 드러내는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실제 진 폴 게티는 그보다 훨씬 더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돈을 벌고 모으는 데에는 집착적이었지만, 인간관계에는 냉소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직원들이 사용하는 전화기조차도 동전 투입식으로 바꾸었으며, 자신이 머무는 저택에 히터를 켜는 것도 극도로 아꼈다고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돈을 사랑한 남자'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술품 수집에는 놀라운 집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대 로마 조각, 르네상스 회화, 프랑스 18세기 가구, 희귀 도서 등 그는 미술사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컬렉션을 남겼습니다. 그가 인간관계에는 인색하면서도, 예술작품에는 극도로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은 저에게 깊은 아이러니로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그는 사람보다는 ‘불멸의 가치’를 지닌 것에만 마음을 줄 수 있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면모를 통해 진 폴 게티는 자본주의의 양면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남습니다. 그는 물질을 통해 불멸을 꿈꿨고, 감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체계를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는 그 미묘한 태도의 경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게티 박물관: 부의 상징에서 공공 예술 공간으로
오늘날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센터(Getty Center)는 단순한 박물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 폴 게티가 남긴 유산의 종합체이며, 동시에 자본이 예술과 만났을 때 어떤 형태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97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그의 수집품과 유산을 바탕으로 게티 재단에 의해 운영되며,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공공문화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단지 작품만 감상한 것이 아니라 진 폴 게티라는 인물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박물관 건물은 리처드 마이어의 설계로, 건축 자체가 예술작품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웠고, 내부 공간은 빛과 여백의 조화를 통해 관람객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작품은 물론, 박물관이 위치한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LA 전경까지도 감동을 주는 요소였습니다. 게티 센터에는 유럽 고전 회화, 중세 필사본, 고대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시 방식 또한 매우 세련되고 현대적입니다. 진 폴 게티가 생전에 추구했던 미적 완성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공간이 이제 ‘공공의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부자가 독점하던 예술이, 이제는 대중 모두가 향유하는 자산이 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게티 박물관이 진 폴 게티의 논란 많은 생애를 일정 부분 ‘구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생전에 비정한 인물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유산은 결국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니까요. 그 역시 이를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수집품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사유의 공간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영화 '올 더 머니'는 자본, 인간성, 예술의 경계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실존 인물인 진 폴 게티가 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가족보다 재산을 선택했고, 인간적인 온기보다 체계적 계산을 앞세웠으며, 동시에 역사상 가장 방대한 미술품 컬렉션을 남긴 인물이기도 합니다. 현실은 때때로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더 잔인하며, 더 철학적입니다. 진 폴 게티의 삶과 박물관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에게 영화 '올 더 머니'는 단순한 실화 각색물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가치란 무엇인가'를 묻는 깊은 성찰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게티 박물관에 꼭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그 공간 안에는 영화로 다 담아내지 못한 진실과, 우리가 잊고 지내는 질문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