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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둠 속의 미사' 힐하우스와의 연출 비교, 인간의 믿음, 고딕 호러

by chacha5 2025. 5. 14.

'어둠 속의 미사'
'어둠 속의 미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어둠 속의 미사(Midnight Mass)’는 공포 장르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신앙과 철학,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에 대한 깊은 질문이 숨겨져 있습니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힐하우스의 유령’과 ‘블라이 저택의 유령’으로 이미 고딕 호러의 대가로 인정받았으며, 이번 작품을 통해 더욱 내밀하고 신학적인 주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 글에서는 플래너건 세계관의 맥락에서 ‘어둠 속의 미사’가 가지는 의미와 구조, 그리고 미장센과 철학의 결합을 살펴보겠습니다.

힐하우스와의 연출 유사성

영화 '어둠 속의 미사'를 연출한 마이크 플래너건의 연출 방식은 극단적인 공포보다는, 인간 심리의 트라우마와 내면의 상처를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힐하우스의 유령’에서는 가족 내 비극과 슬픔이 반복되며 각 인물의 삶을 잠식해 가는데, ‘어둠 속의 미사’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관찰됩니다.

두 작품 모두 ‘시간의 왜곡’과 ‘과거의 회귀’를 통해 인물들이 현재의 위기를 맞는 방식으로 서사를 끌고 갑니다. 라일리는 과거 음주운전으로 한 여성을 죽이고, 그 죄책감을 안고 크록섬으로 돌아옵니다. 이는 ‘힐하우스’의 넬이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령에게 끌려가는 구조와 유사합니다.

또한 플래너건은 플래시백과 롱테이크, 그리고 인물의 대화를 중심으로 감정의 흐름을 천천히 풀어냅니다. 공포를 만들어내는 장치는 갑작스러운 등장이나 음향 효과가 아닌, 말과 침묵 사이에 숨어 있는 진실입니다. 어둠 속의 미사에서 라일리와 에린이 죽음 이후의 존재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마치 두 철학자가 담배 한 개비를 나누며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듯한 정적이고도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플래너건은 공포를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하는' 감정으로 재구성합니다. 등장하는 ‘흡혈귀’도 명확한 존재로 묘사되기보다는, 신앙과 죄의식, 그리고 기적에 대한 왜곡된 해석의 상징적 존재로 등장합니다.

유령보다 무서운 믿음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종교 호러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맹신이 만들어낸 집단심리의 광기를 다루는 드라마입니다. 신부 폴 힐은 젊음을 되찾고자 흡혈귀의 피를 받아들이고, 이를 ‘신의 기적’으로 해석하여 성도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의 욕망과 절망을 ‘구원’이라는 단어로 포장하여 조용히 확산시킵니다.

특히 인상 깊은 인물은 베벌리 킨입니다. 그녀는 표면상으론 철저한 신자이며, 마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신념을 무조건적 진리로 규정하며 타인을 판단하고 배제하는 인물입니다. 그녀의 대사는 종종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권위와 정당성을 갖춘 듯 보이지만, 플래너건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인지를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믿음은 고귀한 가치일 수 있지만, 그것이 권력과 결합되는 순간, 집단의 이성은 무너집니다. 마을 주민들은 신부와 베벌리의 ‘축복’을 거부하지 못하고 점차 죽음과 부활의 사이클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윤리는 무너지고, 오직 “신의 뜻”이라는 강박이 지배하게 됩니다.

결국 ‘어둠 속의 미사’는 유령이나 흡혈귀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맹신하는 인간 자신이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집니다. 플래너건은 악을 괴물의 형태로 단순화하지 않고, 오히려 ‘신을 믿는 사람들의 태도’ 속에 녹여내며 공포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고딕 호러에 담긴 철학적 죽음

이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남기는 인상은 ‘공포’보다 오히려 긴 여운입니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전형적인 고딕 호러의 틀—어두운 교회, 폐쇄된 섬, 뿌연 하늘, 날벌레가 가득한 묘지—을 배경으로 사용하지만, 실제로 다루는 것은 신과 인간, 죽음과 존재, 구속과 자유입니다.

에린과 라일리의 대화는 특히 상징적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죽음을 앞두고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 라일리는 “의식은 우주의 일부로 사라진다”는 유물론적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고, 에린은 “사랑과 기억은 영혼이 된다”는 신비주의적 신념을 고백합니다. 이 대화는 단지 인물 간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이 드라마의 중심 주제를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드러냅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마을이 집단 광신 속에 불타는 장면은 압도적입니다. 모든 이들이 신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며, 그 끝에 남는 것은 불타는 교회, 죽은 아이들, 피로 물든 바다뿐입니다. 그리고 신부는 침묵합니다. 플래너건은 이 지점에서 종교의 기능과 한계를 철저히 비판합니다.

결론

마이크 플래너건은 ‘힐하우스’로 시작된 유령 이야기에서, ‘어둠 속의 미사’를 통해 더욱 심오한 철학적 공포로 이동했습니다. 그가 구축한 세계관은 단순히 고딕풍 연출이나 트라우마의 반복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점점 인간의 선택, 신념, 그리고 구원의 가능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으며, 이 시리즈는 그 결실 중 하나입니다.

‘어둠 속의 미사’는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이 믿는 것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문장을 실감케 하는 작품입니다. 인간이 구원을 외치며 지옥을 만들어내고, 진실을 빙자해 파멸을 택하는 모습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의 거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공포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종교나 철학, 인간 심리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이크 플래너건은 이제 단순한 ‘호러 명장’이 아닌, 철학적 스토리텔러로서의 자리를 확실히 굳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