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공개된 영화 '미스터 노바디(Mr. Nobody)'는 한 남자의 인생을 통해 ‘선택’이라는 개념의 철학적, 감정적 깊이를 시청자에게 강렬하게 전달한 작품입니다. 자코 반 도르말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구조와 실존주의적 주제를 복합적으로 엮어낸 실험적 서사로 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인공 니모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가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 글에서는 ‘결정’, ‘삶’,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미스터 노바디'가 어떻게 인간의 존재를 해석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어떤 통찰을 주는지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은 왜 결정을 후회할까?
영화 ‘미스터 노바디’의 시작점은 한 아이의 결정입니다. 니모는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어머니를 따라갈 것인지 아버지와 남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결정이 만든 다양한 현실 세계를 모두 병렬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선택이 삶을 바꾼다’는 진부한 문장이 아닙니다.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택하지 않는 상태, 즉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상태’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탐색합니다.
니모는 선택을 유예함으로써 ‘모든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는 철학적으로 결정론과 자유의지 논쟁에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자유의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가 선택하지 않더라도 어떤 경로로든 인생이 흘러간다면, 그것은 결정론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니모가 선택하지 않은 삶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는 설정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선택을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나요?” 그리고 “그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나요?”라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선택을 하고 나서 후회를 하지만, 영화는 후회라는 감정이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에서 비롯된다는 철학적 해석을 제시합니다. 즉, 우리가 느끼는 후회의 본질은 실제 삶보다 존재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한 집착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결정’은 단순한 갈림길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 양식을 결정짓는 근본적인 행위입니다. '미스터 노바디'는 이 지점을 깊이 있게 파고들며, 선택이란 단지 앞을 향한 발걸음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자기 고백임을 보여줍니다.
모든 삶은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다양한 삶을 동시에 조명하며 그 모든 삶이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니모는 어머니를 따라가거나 아버지와 남는 선택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거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거나, 사고로 죽거나, 노년까지 살아가는 등 수많은 경우의 수를 실현합니다. 이 각각의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인생을 구성하며, 영화는 이들을 동일한 무게로 다룹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영화가 어떠한 삶도 ‘옳다’거나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각 삶의 고통과 기쁨, 만족과 실망, 사랑과 상실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묘사하면서, 우리가 겪는 모든 감정과 사건이 삶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임을 강조합니다. 어떤 삶은 겉보기에 행복해 보이지만 내면은 공허하고, 또 다른 삶은 눈물투성이지만 깊은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즉, '미스터 노바디'는 삶의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런 관점은 실존주의 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르트르와 카뮈 같은 철학자들은 ‘삶의 본질은 없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의미 없는 세상 속에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니모는 다양한 선택을 통해 삶의 무수한 형태를 경험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나가려 노력합니다.
또한 이 영화는 우리가 현재의 삶에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니모가 경험하는 다양한 삶은 모두 실재하는 우리의 가능성일 수도 있으며,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인생도 무수한 가능성 중 하나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생은 절대적으로 가치 있으며, 충분히 의미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설득합니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영화가 독창적인 이유는 바로 ‘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서사 구조 전체에 적용했다는 점입니다. 보통 영화는 하나의 플롯을 따라가지만 이 작품은 동시에 여러 인생을 보여줍니다. 이때 관객은 특정 삶에 감정이입하기보다는,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게 됩니다.
니모는 모든 가능성을 인지하고, 동시에 살아갑니다. 이는 마치 양자역학의 상태처럼 하나의 선택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한한 가능성이 공존한다는 개념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개념을 단지 과학 이론으로 끝내지 않고, 인간 내면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합니다. 우리는 가능성이 너무 많아질수록 결정장애에 빠지기 쉽고, 실제 삶을 마주하는 데서 도망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영화 속 니모 역시 그 가능성 속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그는 결국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며, 존재 자체가 흐려져 갑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제시합니다. 모든 가능성은 아름답지만, 오직 하나의 선택만이 현실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가능성 속에 머무는 것은 안전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선택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철학적으로는 이는 하이데거의 실존론과도 연결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현존재’로서 스스로를 세계 속에 던져 존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니모는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비로소 한 가지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선택하며, 그동안의 불안과 방황을 끝냅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대신, 하나의 삶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바로 그것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메시지입니다.
영화 ‘미스터 노바디’는 영화적 상상력을 넘어 인간 존재의 핵심을 파고드는 철학적 예술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불완전함, 각 삶이 지닌 고유한 가치, 그리고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고찰하게 만듭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선택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 앞에 놓인 선택지를 외면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현실을 살아가는 독자분들을 응원합니다. 선택은 두렵지만 그 안에 인생의 모든 가능성과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