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The Platform)’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통해 사회와 인간 본성을 성찰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불평등한 사회 구조, 인간의 도덕성과 집단 심리를 꽤나 리얼하게 체험하게 합니다. 본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부터 불평등한 사회적 구조, 시스템의 본질을 중심으로 ‘더 플랫폼’을 깊이 있게 재조명합니다.
영화 '더 플랫폼'의 줄거리
영화 '더 플랫폼'은 고렝이라는 인물이 센터라고 불리는 미지의 수직 감옥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곳은 각 층마다 두 명씩 배정되어 있고, 중앙에 뚫린 거대한 구멍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음식이 담긴 플랫폼이 하루에 한 번씩 내려옵니다. 고렝은 48층에서 시작하며, 그와 함께 있는 트리마가시는 이 구조에 익숙해진 인물로, 그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무심하게 가르쳐 줍니다.
플랫폼에는 고급스럽게 준비된 음식이 차려져 있지만 상층에 있는 사람들부터 먼저 먹고 난 뒤 음식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누군가가 욕심을 부리면, 아래층은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시스템이 정해진 룰이나 설명 없이 운용된다는 점입니다. 한 달마다 무작위로 층이 재배정되기 때문에 오늘의 상층이 내일은 하층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극단적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로 변해갑니다.
고렝은 처음에는 룰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협력을 제안하지만, 층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의 본성이 드러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달간 6층에 배치된 그는 인간이 가진 욕망과 자만을 보게 되고 171층으로 떨어졌을 땐 같은 층에 수감 중인 트리마가시에게 묶여 식량으로 사용될 뻔합니다.
결국 고렝은 같은 층의 동료 바하트와 함께 플랫폼을 타고 최하층까지 내려가기로 결심합니다. 그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자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행위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몫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배식을 강제로 조율하며 내려갑니다. 이 여정의 마지막에서, 그들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어린 소녀를 발견합니다. 소녀는 공식적으로 이 공간에 있어선 안 될 존재이며, 시스템이 예측하지 못한 변수입니다.
고렝은 플랫폼 위에 소녀를 태워 다시 위로 보내고, 자신은 남습니다. 영화는 명확한 결론 없이 끝나지만, 관객에게는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메시지는 도착할 수 있을까?", "이 구조는 바뀔 수 있을까?"
수직 구조로 표현된 불평등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상징은 바로 수직적 구조입니다. 영화의 공간 배치는 수백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고, 각 층의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로 음식이 이동하는 방식에 따라 생존 여부가 갈립니다. 이 수직 구조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자원의 분배와 계층화된 사회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자원을 독점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이 도착하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과도한 소비와 무책임한 행동은 결국 아래층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하층은 음식 찌꺼기를 받거나, 아무것도 받지 못해 굶주리거나, 서로를 해치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영화의 특이한 설정은 이 시스템이 ‘무작위 배치’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가 어느 층에 있는지는 운에 달려 있고, 다음 달에는 완전히 다른 층에 배정됩니다. 이는 마치 현실 세계의 경제적 불평등이 겉보기엔 ‘공정한 기회’를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구조적 불평등과 연결되어 있음을 꼬집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상층에 있을 때는 기꺼이 욕심을 부리면서도, 하층에 떨어지면 그동안의 시스템을 비난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의 자기모순적 심리와 계층 이동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특히 영화 속 한 인물은 상층에서 비싼 음식을 흘려보내며 조롱하고, 누군가는 하층에서 살기 위해 동료를 해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자원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윤리조차도 계층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지만 나누지 않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절망과 폭력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더 플랫폼의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점은, 이 모든 시스템을 운영하는 ‘정체 불명의 관리자’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관리자들은 실제로 등장하지 않으며, 플랫폼의 음식 제작자, 경비원, 인터폰 등 간접적 존재로만 암시됩니다. 이처럼 불투명하고 비인격적인 운영은 현대의 거대 시스템이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드러냅니다.
영화에서 플랫폼 위에 놓인 음식은 사실 충분히 모두에게 돌아갈 양입니다. 누군가 먹을 만큼만 먹는다면, 누구도 굶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분배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자율성과 이기심에 맡겨버립니다. 이는 시장 자유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도 읽힙니다. 구조는 통제하거나 지시하지 않으며,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방임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측 가능한 파괴입니다.
고렝과 바하트는 이러한 시스템을 거슬러 음식을 나누고 조율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타적인 시도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계층마다 반응은 다릅니다. 어떤 층은 배려를 이해하고 협조하지만, 대부분의 층은 위협을 받고서야 순응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성에 대한 성찰을 넘어서, 시스템 내에서 도덕이 강제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만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 말합니다. 플랫폼 위에 어린 소녀를 태워 올리는 행위는 단순한 해방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안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희생의 결정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 없는 혁명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경쟁이 일상화되고, 불평등이 구조화된 사회—를 하나의 수직 감옥에 빗대어 정면으로 드러냅니다. 영화의 강력한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나눌 수 있음에도 나누지 않는 자들, 자신이 위에 있을 때만 조용한 자들, 어떤 규칙도 없이 방임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무기력해지는 개인.
우리가 얼마나 구조에 익숙해져 있고, 때론 그 구조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플랫폼’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플랫폼을 타고 내려가는 고렝의 여정은 단지 공간적 이동이 아닌 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소녀를 올리는 장면은 시스템을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연대라는 상징과 메시지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더 플랫폼’은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는 우연이고, 그 우연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