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리메이크된 *어스 어바이즈(Earth Abides)*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 이후 인류가 대부분 사라진 지구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이시(ISH)'가 새로운 문명을 다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1949년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번 영화는, 현대적 연출과 인간 본성에 대한 심화된 고찰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공통된 장르 아래, 이 영화가 한국, 일본 등 아시아권의 종말영화들과 어떤 차이점과 접점을 보이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본문에서는 문화적 배경, 생존 서사의 구조, 희망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어스 어바이즈*와 아시아권 종말영화의 특징을 비교하여 분석해 보겠습니다.
아시아와 미국의 종말관 차이: 문화가 만든 세계관
*어스 어바이즈*는 미국의 고전 SF문학을 바탕으로 한 작품답게, 개인의 주체성과 자아 성찰을 핵심 테마로 삼고 있습니다. 주인공 이시는 문명 붕괴 후 처음엔 두려움에 빠지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다음 세대를 위한 문명 회복이라는 사명을 갖고 행동합니다. 이 같은 서사는 전형적인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과 '자수성가'의 서사 구조를 기반으로 합니다. 반면 아시아권의 종말영화들은 보다 감정적이며 집단 중심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영화 *부산행*에서는 좀비로 인한 사회 붕괴 속에서 가족애, 타인과의 연대, 그리고 개인의 희생을 중심 서사로 구성합니다. 일본의 *일본침몰(2006)* 역시 국가적인 재난 상황에서 한 개인의 노력보다는 정부, 과학자, 국민 전체의 협력과 도덕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아시아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재난 속에서의 인간관계, 희생, 연대가 더 중요하게 그려집니다.
생존 방식: 주체성과 공동체의 경계
생존을 그리는 방식에서도 *어스 어바이즈*와 아시아권 영화는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시는 생존자 중 하나로서, 무질서한 세상에서 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는 인물입니다. 그는 과거의 문명을 복원하는 데 관심이 많으며, 후손들에게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려 애씁니다. 이는 미국이 교육, 과학, 이성 중심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이와 비교해 한국 영화 *판도라(2016)*는 핵발전소 폭발이라는 인재를 다루며, 주인공은 정보가 차단된 상황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정부의 무능과 언론 통제 등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인간 본연의 선의와 책임감을 강조합니다. 일본 영화 *기생수*나 *고질라* 시리즈에서도 개인보다는 전체 사회와의 관계, 자연과의 조화, 책임 있는 선택이 생존의 핵심으로 다뤄집니다.
희망적인 서사: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인가
종말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단연 '희망'입니다. *어스 어바이즈*는 절망적인 배경 속에서도 '인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합니다. 이는 이시가 다음 세대를 위해 문명과 언어를 계승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인류의 미래를 끈질기게 고민합니다. 이는 미국 특유의 미래지향적 사고와 개인의 비전을 반영합니다. 반면 한국 영화 *부산행*에서는 어린아이와 임산부가 살아남으며 끝이 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단 한 줄기 희망만을 남기며 마무리되지만, 그 희망은 '생존자'의 몫이 아닌 '희생자들'의 헌신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이는 희망이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헌신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미국 영화는 '변화를 주도하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아시아 영화는 '변화에 적응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희망을 말하는 방식도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며, 관객의 감정적 여운에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스며듭니다.
*어스 어바이즈*는 미국 문화에서 강조되는 개인의 자아 성찰과 주체적 생존, 문명 회복을 중심으로 구성된 종말 서사입니다. 이에 비해 아시아권 영화는 공동체 중심의 서사, 감정 중심의 메시지, 관계와 희생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이 두 시각은 모두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안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귀중한 방식이며, 단순한 재미를 넘어 깊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오늘날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이들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관객인 여러분이 직접 각기 다른 시선을 통해 이 메시지들을 해석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