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답트 어 하이웨이(Adopt a Highway, 2019)’는 로건 마샬 그린 감독이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장편 영화로, 에단 호크의 섬세한 연기와 함께 깊은 감정선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에서 쉽게 잊혀지고 소외되는 이들의 삶, 특히 출소자와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를 중심으로 ‘돌봄’과 ‘연결’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영화 제목은 미국의 환경정비 프로그램 ‘Adopt a Highway’를 차용한 것으로, 고속도로를 입양하여 깨끗하게 하고 정비하듯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돌보는 행위를 상징합니다.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통해 관객에게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연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출소자의 삶, 현실의 벽
‘어답트 어 하이웨이’의 주인공 러셀 밀러는 1990년대 후반, 삼진아웃 제도에 의해 1온스(283g)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약 장기간 복역하게 됩니다. 삼진아웃 제도는 경범죄더라도 동일한 범행을 세 번 저지르면 중범죄로 간주하여 중형을 내리는 법 제도입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행했던 이 제도 때문에 러셀은 20대 초반에 교도소에 수감되어 21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며 그의 2-30대는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채 사라지고 맙니다. 출소 후 러셀은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온라인 주문 등 기술과 생활 방식이 급변한 사회는 그에게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옵니다. 자신만 제외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루하루를 말그대로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러셀은 처음으로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Wi-Fi가 뭔지도 모른 채 종업원에게 묻고, 이메일 계정을 만드는 데에도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기술에 대한 무지는 물론 21년의 공백이 만든 정서적, 사회적 단절이 러셀이라는 존재를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시킵니다. 정부에서 마련한 임시 거처는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곳이었고 직장을 구하려 해도 이력서에는 20년의 공백이 존재해 취업조차 어렵습니다. 게다가 전과자라는 낙인 속에서 그는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어 진정한 의미의 ‘두 번째 기회’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영화는 러셀의 시선을 따라가며 ‘재사회화’라는 단어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이상인지 보여줍니다. 교도소는 범죄자를 교화하는 장소인 동시에 그들의 삶의 흐름을 멈추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회로 복귀한 후에도 그들의 과거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막는 구조적 장벽이 됩니다. 러셀이 조심스레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신중하게 행동하며, 스스로 변화하려는 모습은 그가 단순히 과거를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려는 진심 어린 노력임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바꿀 수 없는 과거와 그로 인한 현재의 삶을 성찰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약자, 그리고 ‘Adopt a Highway’ 프로그램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Adopt a Highway’ 프로그램은 '고속도로를 입양하다'라는 뜻으로, 도로 환경정비 사업의 일환입니다. 자원봉사 단체, 기업, 개인 등이 자발적으로 도로 구간을 ‘입양’하여 정기적인 청소, 불법 광고물 제거, 잡초 정리 등의 활동을 수행합니다. 이는 정부의 행정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공공 환경 정비를 시민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이자, 방치된 공간을 공동체가 함께 가꾸는 사회적 연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입양’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행정이나 제도라기 보다는 감정적 책임과 관심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로 작용합니다.
(영화 속에서 러셀이 십 대 시절 '어답트 어 하이웨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내용이 그가 오래 된 신문 기사를 읽는 짧은 장면으로 등장합니다. 오프닝 때 스쳐지나가기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장면입니다.)
영화 속에서 러셀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기 ‘엘라’를 우연히 발견하게 됩니다. 엘라는 누군가에게 버려졌고 법적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러셀은 이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의 숙소로 데려와 돌보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던 생명에게 손을 내민 러셀의 행동은 마치 도로의 쓰레기를 주워 깨끗하게 만드는 ‘Adopt a Highway’ 봉사자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는 사회가 포기한 존재를 다시 세상과 연결시키려 합니다.
러셀의 선택은 본인에게도 변화의 계기가 됩니다.그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님도 세상을 떠나서 출소 후에 혼자 살아가야 하는 러셀은 마치 '엘라'처럼 홀로 세상에 버려진 것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그는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괴감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엘라를 돌보며 그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진정한 두 번째 기회를 살기 위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우리 사회에 제도나 복지 시스템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제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개인의 선택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만한 메시지입니다. 또한 영화는 러셀과 엘라를 통해 사회적 약자는 시스템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존재임을,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약자를 ‘입양’할 수 있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상평
‘어답트 어 하이웨이’는 극적인 전개나 감정을 쥐어짜내는 연출 없이 오직 러셀이라는 인물의 일상과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잔잔하게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에단 호크는 말이 많지 않은 인물을 눈빛, 표정, 몸짓으로 표현하며 러셀의 외로움과 회복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한 남자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다 버려진 아기를 만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 안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과 사회적 연대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러셀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회복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또 그 회복이 얼마나 작은 만남에서 시작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누군가를 입양한다는 것은 단지 법적 절차를 넘는 인간적인 결단이며,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윤리적 선택임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출소자나 미혼모, 고아 등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돌아보게 만들고 그들을 다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돌아가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합니다. 그 과정에서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은 쉽게 버려지고 잊혀집니다. 그러나 영화는 말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입양해줄 수 있으며, 당신 또한 누군가를 입양할 수 있다.” '입양'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따듯한 시선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책임감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입양'해야 합니다.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러셀은 우연히 만난 엘라에게 따듯하고 새로운 세상을 선물합니다. 사회로부터 외면당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치유받으며 다시 한번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기회와 희망이 찾아올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이 영화를 꼭 한 번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